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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청소년이 된 베이비박스 아이들… 마음 치유가 먼저입니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6-10-15   /   23
[닫히지 않는 베이비박스 17년의 기록] <5·끝> 여전히 남겨진 숙제
베이비박스 출신 아이들이 벌써 중·고등학생이 됐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진은 한 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는 모습. 게티이미지 뱅크
베이비박스 출신 아이들이 벌써 중·고등학생이 됐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진은 한 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 나아가야 할 곳을 바라보는 모습. 게티이미지 뱅크
2009년 12월 처음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이듬해부터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벌써 고교 1학년(16세)으로, 사회에서 자립할 날도 머지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마음에는 오래된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마음이 힘든 아이들의 치료와 상담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서울특별시립 아동힐링센터 운영도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은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방안을 묻기 위해 최영진 아동힐링센터장과 부청하 상록보육원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아이들을 오랜 기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공통적으로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키우고 훈육하는 방식을 넘어, 아이들이 가진 아픔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자립에 더 요긴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10명의 아이에겐 10개의 아픔이 있다
최 센터장은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겪는 정서적 문제 이면에 ‘트라우마’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 없이 자란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 내적, 외적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집단생활이 불가피한 보호시설의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맞춤형 개별 지도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센터장은 시설에 있는 아동을 키워내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센터의 전신인 ‘동부아동상담소’ 시절부터 근무했던 그는 과거에는 가출 청소년 등 명백한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교정 대상이었다고 했다. 반면 지금은 정서적 문제를 ‘치료’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정서적 문제가 내면에 쌓여 자살, 자해, 폭력 같은 외부 행동으로 드러나기 전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1일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아동힐링센터의 3~4층으로 올라가자 1인실부터 3인실까지 여러 형태의 방이 줄지어 있었다. 중앙에는 모두가 모일 수 있는 큼직한 거실과 TV가 배치됐다. 내부는 50평대 가정집과 구분할 수 없을 듯 했다. 침실 배정에도 아이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엿보였다. 최 센터장은 “자살이나 자해 우려가 관찰되는 아이는 가급적 다른 아이들과 방을 함께 쓰게 한다. 반대로 친구를 괴롭히거나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면 1인실에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트라우마에 개인 맞춤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생각이 반영된 아동힐링센터의 특징 중 하나는 ‘안전계획’이다. 매일 오전, 센터의 아이들은 하루의 목표와 그날의 감정을 정리한다. 그리고 부정적 감정이 올라왔을 때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적는다. 사회복지사 변수민씨는 “물건을 던지면서 화를 내던 아이가 어느 날 ‘지금 너무 감정이 힘드니까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요’라고 말하더라”며 “입소 몇 개월 만에 이렇게 아이들이 바뀌는 걸 보면서 힘든 복지사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시설에는 특수아동 치료사, 임상심리 상담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도 근무하고 있다. “하지마”, “안 돼”라고 반복하는 대신 의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미술치료와 심층 상담이 이뤄진다. 13년을 복지사로 일한 변씨는 “아이들이 어떤 상황일 때 가장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함께 확인하고 그런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알려주면 공격적 행동이 크게 준다”고 설명했다.

특수한 정서적 취약점을 가진 아이들인 만큼 이들을 수용할 대안학교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최 센터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시설은 여전히 부족하다. 센터 2층에도 대안학교가 설치돼 있지만 교육청에서 아직 추가 확대 운영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아 일부 아동만 이용하고 있다. 이 시설 정원이 35명인데 25명밖에 못 받고 있다.

교육이나 훈계가 능사가 아니라는 것도 그의 오랜 생각이다. 센터 지하 1층은 통째로 오락 시설로 채워져 있다. 코인 노래방, 컴퓨터실, 밴드 교실, 춤 연습실 등이 마련돼 있다. 특히 컴퓨터실에는 모든 아이들에게 개인 컴퓨터와 좌석이 배정돼 있다. LED 조명과 큼지막한 모니터까지 흡사 PC방과 다름없었다. 규칙을 지키고 선행을 하면 센터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화폐를 받고, 이것으로 물건이나 간식을 구입하는 매점도 있다. 최 센터장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규칙을 지키며 사는 것의 중요함과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고 싶은 것 찾아주고 사랑으로 품어야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의 부 원장은 정서적 문제와 이상행동을 겪는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야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976년 보육원장에 취임해 50년간 갈 곳 없는 아이들과 호흡해 왔다. 현장에서 베이비박스 출신 아동도 여럿 키운 경험이 있다.

그가 생각하는 근본 원인은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아픔이다. 그는 “베이비박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품에서 자란 게 아니다 보니 정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감정이 증오 수준이고, 그 증오가 종종 비정상적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몇몇 아이들은 자원봉사자 등에게도 별다른 이유 없이 적대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부 원장이 제시한 해법은 ‘좋은 교육’이다. ‘진로’를 함께 탐색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부 원장은 “아이들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빠르게 찾아주는 것이 일탈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단언했다. 부 원장은 “공부를 하라든지, 대학을 가라든지 전혀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뭘 해보고 싶다고 하면 학원도 보내주고 최대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꿈을 찾아 나아가는 아이들이 그의 시설에는 여럿 있다. 최근 중학교에 입학한 한 아이는 권투 선수가 되고 싶어 맹훈련 중이다. 원장실 맞은편에 권투 벨트를 차고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한 남자 아이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었다. 부 원장은 “경찰, 축구 선수, 수영 선수 등 다양하다. 마땅한 적성을 찾지 못해 헤매는 아이들이 중도에 포기할 때도 있다.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 노력해 자기 진로를 잡아놓으면 예전보다는 훨씬 문제행동을 덜 일으킨다”고 말했다.

친부모가 아니어도, 베이비박스 아이들을 친자식 못지않게 사랑하고 아껴준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것도 부 원장의 교육 철학이다. 상록원에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10년 넘게 대학병원을 오가며 힘겹게 치료받았다. 청구된 병원비만 수천만원이다.

하지만 의학적 치료 이상으로 이 아이를 회복하게 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부 원장이 자랑스러운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때 사회복지사 한 명이 도맡아 보살피면서 키워냈어요. 시설에 왔다가 병원에 갔다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고. 자기 가정과 아이들이 있는데도 말이에요. 수술과 치료도 잘 받았기에 나았겠지만, 그만큼 극진한 사랑이 없었다면 아이가 결코 지금처럼 회복해서 잘 지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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