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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2살 두 청년의 다른 삶... 보육원 나온 이들은 이렇게 살아간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6-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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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자립준비청년은 비슷하고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
| ⓒ 챗GPT |
선우(남·22세·가명)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 손에 끌려 시설에 들어갔다. 경제적 사정 때문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진짜 해본 적이 없어요. 거기서 이미 너무 큰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은지(여·22세·가명)는 7살에 시설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상하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냥 그 공간을 빨리 뜨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퇴소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두 사람은 22살 같은 나이다. 둘 다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주거 지원을 받아 아파트 7~8평 공간에서 혼자 사는 것도,
환경이 달랐던 두 청년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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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청년에게 시설은 다른 의미였다. |
| ⓒ 챗GPT |
선우가 자란 곳은 경기 이남 지방 A군 소재 B복지재단 산하 아동양육시설이다. 종교 법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가정형 소규모 구조였다.
"형들이랑 직원분들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좋은 기억밖에 없어요."
은지가 자란 곳은 서울 C구 소재 D아동복지시설이다. 아파트 형 구조의 7층 건물에 아동 80~90명이 생활했다.
"고인물 이모들이 너무 많았어요. 기가 눌리고..."
은지가 말하는 고인물 이모들은 경력이 많고 타성에 젖은 복지사를 일컫는다. 마치 사감 선생님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퇴소 청년인 선우와 은지에게 시설은 전혀 다른 의미다. 선우에게 시설이 그리운 곳이라면
선우는 대학 친구들에게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은지는 조금은 다른 이유였다.
"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단체로 학교를 빠질 때 특정될 수밖에 없어요. 사는 곳이 알려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시설에서 원생들이 참석해야 하는 행사나 단체 외부 활동이 있을 때 시설에 사는 아이들만 학교를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은지는 초등학교 때 딱 한 번 가장 친했던 한 명의 친구에게 자신이 시설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집에 가는 길 내내 은지가 불쌍하다며 울었다.
"그게 평생 기억에 남아요. 고맙기도 하고."
은지는 지금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학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말을 꺼내면 내 과거를 다 설명해야 되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 상황이 귀찮아요."
자신이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은 스스로 설명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배경이었다.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쨌든 추가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선우는 부모와 법적으로 단절됐다. 입소 당시 친권이 포기됐다. 가족관계등록부에 부모는 없다. 부모의 현재 거처도 모르지만 찾을 생각도 없다.
"성인이 되고도 부모님을 보고 싶고 찾고 싶다면, 그게 애정 결핍이 될 것 같아요. (저는)이미 거기서 충분히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은지는 다르다. 할머니와 고모 두 분이 초등학교 때까지 한 달에 한두 번 은지를 찾아 시설을 방문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할머니 집에 간다.
"그 상자를 열기가 좀 두려워요."
할머니에게도 은지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을 것이다. 둘이 가진 각자의 비밀을 지금에 와서 캐묻는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은지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원가정이 가까울수록 상처도 가깝다. 은지가 시설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집단생활 그 자체가 아니었다.
"매일 밤 울었을 거예요."
어린 은지가 시설 문을 나서는 할머니 등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았을 생각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자립정착금, 그리고 흉흉한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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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립준비청년 일러스트 [강민지 제작] |
| ⓒ 연합뉴스 |
두 사람이 시설을 나오면서 받은 자립정착금은 액수가 크게 달랐다. 선우는 지방 A군에서 1000만 원을 받았다. 은지는 서울에서 2000만 원을 받았다.
선우는 디딤씨앗통장에 얼마가 쌓였는지 모른다. 아파트가 해결됐고 대학 학비도 무료이기 때문에 그걸 꺼내 쓸 생각이 없어 시설 관리자에게 맡겼다.
선우의 자립정착금은 1000만 원, 은지의 자립정착금이 2000만 원인 이유는 그들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에서 연유한다. 이 격차는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2024년 기준 자립정착금은 지자체마다 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이상까지 벌어진다. 아이는 선택하지 않았다. 국가가 배치했다.
자립정착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시설을 나오면 선배나 가족이 찾아와 온갖 명분으로 그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선우가 말했다.
"주로 원가정에서 와요. 시설 선배들이 그런 건 없었어요."
은지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 달라고 찾아오거나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은지가 전해준 사례는 같은 시설을 나온 언니였다. 아버지의 폭력이 심해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고
어느 날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병원에 있고 수술비가 필요하다. 수소문해서 따님 번호를 찾아서 연락드렸다고 주민센터 직원이 말했다고 해요."
그 언니는 거절했다. 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자립정착금과 디딤씨앗통장 잔액은 퇴소 시점에 일시 지급된다. 20살 청년이 생애 처음 쥐는 큰돈이다.
은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퇴소하고 나서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 끈끈해지는 것 같아요. 그때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의지가 되다 보면 정이 드니까요."
그 말의 이면에는 이런 뜻도 있다. 퇴소 이후, 원가정이 아닌 시설 형제들이 서로의 안전망이 된다는 것. 국가가 채워주지 못한 자리를 또래가 채운다.
다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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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11월 17일 당시 이기일 보건복지부 차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선우에게 부모와의 단절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호였다. 부모를 기억하지 않으니 부모가 돌아올 자리도 없었다.
자립준비청년 제도는 퇴소 시점에 정착금을 지급하고, 이후 5년간 자립수당 월 50만 원을 5년 동안 지급한다.
그러나 이 돈이 누구에게 흘러가는지를 추적하는 제도는 없다.
정착금 수령 후 원가정으로부터 금전 요구를 받았는지, 실제로 지급했는지를 확인하는 구조는 없다.
은지는 독립 초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냥 혼자 부딪혔죠."
부동산 계약, LH 신청, 생활비 관리, 원가정과의 문제, 모두 22살이 혼자 감당해야 할 목록이었다. 시설은 단체생활의 규칙을 가르쳤다.
선우가 살던 B복지재단 시설은 소규모 가정형이었다. 은지는 80~90명이 한 건물에서 생활하는 집단시설이었다. 하나는 종교법인이 운영하며 후원이 풍부했다.
어떤 시설에 배치되느냐는 아이가 결정하지 않았다.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자립정착금이 달라지고, 어떤 원가정을 가졌느냐에 따라 퇴소 후 위험이 달라진다.
선우는 인터뷰 중에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저는)운이 좋은 케이스죠."
선우가 자란 시설 환경은 전국에 있는 230여 개소의 아동양육시설 중에서도 최상위로 꼽힐 만한 곳이다.
은지는 잘 살고 있다. 헬스와 필라테스를 하고, 4000만 원이 넘는 돈을 불리기 위해 편의점 알바와 근로 장학생을 병행하며 학교에 다닌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청년의 삶은 건강하다. 이것은 제도의 성공인가. 아니면 두 청년의 타고난 생존력인가.
우연한 기회에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청년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 나라는 좋은 시설을 만난 아이나 나쁜 시설을 만나 아이 모두에게
여기 기록된 22살 두 청년의 삶은 그래서 다행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해줘야 할 말은 다행이라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지역명, 시설명은 모두 가명 또는 익명으로 처리했습니다.
*인터뷰는 2026년 4월 27일(선우), 5월 7일(은지)에 각각 전화 통화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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