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에 비친 주사랑공동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소식 >언론보도

[오마이뉴스] "엄마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경찰 앞에서 지문 닦아낸 목사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6-03-25   /   72
[보이지 않는 아이들] 베이비박스 17년, 이종락 목사가 아직 그 자리를 지키는 이유
▲  베이비박스
ⓒ (재)주사랑공동체

몇 년 전 베이비박스를 찾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언덕길을 처음 올랐다. 
예상보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험한 길을 찾아든 절박한 사연의 사람들과 영문도 모른 채 박스 안에 넣어졌을 아이들이 떠올라서였다.

어느 추운 겨울 새벽, 대문 앞 생선 박스에 담겨 있던 아이를 맞이하면서 시작된 베이비박스였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유기아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양육이 포기되는 보호아동과 그 부모들의 참혹한 사연도 함께 떠올랐다.

베이비박스 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이름인 이종락 목사는 그 뒤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 목사의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된 고민의 갈래가 유기아동에서 모든 보호아동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까지 확장되어 왔다.

한때 우리 사회의 격렬한 논쟁거리였던 베이비박스는 이제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은 아니다. 
다만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불멸의 고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고통을 오롯이 받아 안은 장치가 베이비박스였고 
그곳에서 시작된 아이들의 미래는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받아 안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래 현재까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들을 위해 작동해야 할 법과 제도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나마 존재하는 법과 제도는 사각지대를 만들었고 그늘진 그곳에서 아이들은 신음하고 있다.

찬반 논란에 휩싸였던 베이비박스

▲  이종락 목사
ⓒ (재)주사랑공동체

난곡동 언덕길을 다시 올랐다. 베이비박스로 오는 아이들 숫자는 그새 80~90%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이종락 목사는 아직 거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이비박스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곧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와중에 찾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공문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송처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구청과 경찰이었다. 
공문은 폐쇄와 처벌을 예고하며 3년 동안 반복해서 날아왔다. 이 목사는 항변했다.

"아니 당신들이 공무원 맞나. 내 집에 내가 구멍을 뚫어서 만든 생명 살리는 박스를. 
정부에서 하지 못한 일을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데 정부는 대책도 없잖아. 
그러면 법 제도 행정 복지로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안 들어오도록 만들어라. 외국에서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결국 구청이 철거하러 오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이 목사는 날짜와 시간을 특정해달라 요구하고 KBS·MBC·SBS에 연락했다.

"3사 방송국이 다 온다고 그랬어요. 그게 그 사람들이 알고 난 뒤에 철거를 무산시켰죠."

방송보도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두려웠던 것 같았다. 경찰도 가만있지 않았다. 
과학수사대가 출동해 베이비박스로 아이가 들어 온 직후 지문 채취를 시도했다. 
이 목사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지문을 닦아낸 뒤 자기 지문을 찍고 말했다.

"(이 지문의 당사자가) 아이를 맡긴 사람이니까 지문 조사해서 처벌해라. 
국가가 보호자가 보호할 수 없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무작정) 엄마를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

경찰은 목사님 뜻 알겠습니다라며 돌아갔다. 그 뒤로 지문 채취 시도는 없었다.

국가기관과 별개로 민간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베이비박스 앞에서 상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유괴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베이비박스를 찾아온 여성들을 직접 상담해서 아이를 받겠다고 했다. 
그들은 24시간 3교대로 편성해 베이비박스 앞을 지키고 서서 한 달 가까이 버텼다.

하지만 찾아온 여성들과 마주쳐도 상담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 목사가 추운데 안으로 들어와 차도 마시고 라면도 먹자고 권했지만 
이들은 끝내 들어오지 않고 버티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철수했다.

연락 끊어버린 남성들, 혼자 남겨진 여성들

이 목사의 문제의식은 국가나 단체와의 대치에서 멈추지 않았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생모들과 쌓아온 상담 경험이 그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 목사는 10년 넘게 천 건 넘은 상담을 직접 했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지겹게 들어야 했던 사연이 있었다. 
임신만 시키고 연락을 끊어버린 남성들과 혼자 남겨진 여성들이었다.

"상담을 해보니까 엄마들이 임신만 시키고 도망간 아빠들에 대한 증오심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로 인한 강박관념과 정신적 고통, 출산 우울증까지. 성이라는 게 생존의 도구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따라야 된다는 말이야.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아무 책임을 안 지려는 행동에 대해... 그래서 부성애법까지 만든 거예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목사가 직접 법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현장에서 10년 이상 쌓아온 상담 경험이 제도의 공백을 가장 먼저 알게 했고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사연은 법조문을 만드는 질료가 되었다.

2024년 7월 시행된 보호출산법의 기원이 이종락 목사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5년 그는 지금의 보호출산법의 모태가 되는 비밀출산법을 직접 설계하고 입법을 추진했다.

"11년 전에 비밀출산법을 만들었어요. 부성애법까지 함께요. 이 법이 왜 필요하냐. 항상 이야기했던 것처럼 
법 제도 행정 복지가 잘 되면 베이비박스가 큰 기능을 안 해도 된단 말이야. 
선진국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지금 되고 있으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 이 생각이 들었고 
그러므로 베이비박스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비밀출산법을 만들기 시작했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해 
법학 교수, 변호사, 판사 출신 인사들과 함께 일 년 반에 걸쳐 설계했다. 
수천만 원 비용으로 만들어진 법안은 당시 오신환 국회의원(서울 관악을, 19·20대)을 통해 발의됐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 법안이 10년 뒤 김미애 국회의원(부산 해운대을, 21·22대) 손을 거치면서 
위기임산보호출산법으로 부활했다. 이 목사는 부성애법을 비밀출산법에 함께 담았다. 
주 내용은 양육비 미납 시 운전면허 취소에 이어 여권취소와 월급 압류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소득이 없다면 국가가 먼저 대납하고 소득이 생겼을 때 환수하는 구상권 조항까지 포함된 법안이었다. 
이 원안의 핵심 두 가지는 10년이 지나서야 현실이 됐다.

운전면허 제재는 2021년 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고 2024년 9월에 적용 기준이 갖춰졌다. 
국가 선지급 후 구상 제도는 2025년 7월에야 시행됐다. 
아쉽게도 방향은 이 목사의 원안을 따랐지만 강도는 달랐다. 
운전면허 취소가 아닌 6개월 정지였고, 여권 취소 조항은 빠졌다. 이 목사의 평가는 냉정했다.

"이거는 이 사람 안 잡는 법이야. 없으면 안 되니까 마지못해 한 거예요. 
느슨하게.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생겨요?"

다시 베이비박스로 돌아오는 사람들

▲  감사원 감사결과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 아동의 시설보호율은 96.6%였다. 아이들이 입법의 피해자였음이 확인됐다. 무려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삶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시설로 떠넘긴 셈이다. 출처 : 감사원 감사보고서(2019) / 보건복지부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
ⓒ 김지영

한편 2024년 7월 보호출산제가 시행됐다. 베이비박스 입소 아동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2023년 79명이던 수치가 2024년 52명으로 2025년에는 26명으로 내려갔다. 이 목사는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법 제도 행정 복지가 잘 돼서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출산이 전반적으로 줄고, 결혼을 안 하고, 철저한 생명 경시가 팽배해졌죠."

베이비박스 입소 아동이 줄어드는 수치만 놓고 보면 보호출산제는 분명 가시적인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출생아 수는 10년 사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보호 출산 아동은 기존 유기아동 통계와 다른 항목으로 분류된다. 
줄어드는 숫자가 현실의 개선인지, 측정 방식의 변화인지는 구분이 필요하다.

주사랑공동체가 별도 집계하는 병원 밖 출산 비율은 2018년 12.4%에서 
7년이 지난 2025년에는 23.1%로 오히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베이비박스로 오는 상담자를 보호출산제의 공적 상담 창구인 1308로 넘기고 있지만 
다시 베이비박스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공무원과의 상담이 주는 심리적 부담과 익명성의 한계 때문이다.

"상담이 지금 잘 안되고 있잖아요. 상담 자체가 자기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이 아닌 거예요. 
공무원한테 상담할 때 벌써 부담이 엄청나게 되는 것 같아. 우리는 익명 상담이잖아요. 
엄마의 상담이기도 하고 아빠의 상담이기도 하고 가족 상담처럼 
편안하게 자기 마음을 다 오픈할 수 있는 상담이 돼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호출산법이 품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또 있다. 불법 체류 외국인 산모다. 
이들은 해마다 빠지지 않고 통계에 잡힌다. 법적으로 도무지 국적 문제 해결이 난망하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책임 있는 말을 듣지 못했다. 문제는 있는데 답이 없다.

이 목사는 홍콩에서는 출산 즉시 270~280만 원을 지원하고 산후조리와 주거지까지 연계하는 정책을 
예로 들며 선지원 후행정 원칙 도입을 강조했다.

"한국은 신청하고 두 달은 지나야 지원이 나와요. 
동남아에서도 하는 지원이 왜 대한민국에선 안 되느냐는 말이야. 
약자들한테 호의를 베풀지 못하는 복지가 지금 생명 경시를 일으키고 있어요."

입양 시스템의 붕괴 또한 이 목사는 강하게 질타했다. 
2025년 7월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공적입양체계가 본격화한 이후 입양 건수가 사실상 제로인 현실을 지적하면서다.

"법이 통과되고 시행까지 2년이 넘도록 세팅이 안 됐어요. 이거는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국가가 아이들 인권을 짓밟는 몰지각한 행위가 아닌가. 회개해야 돼요."
 
이종락 목사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이유

▲  베이비박스 아동의 공적 보호경로
ⓒ 김지영

2009년부터 시작된 베이비박스다. 처음 입소한 아이가 만으로 17세가 됐다. 
시설에서 자란 그 아이가 내년이면 사회로 나온다. 이 목사는 이들의 사회 정착이 또 다른 벽에 부딪힐 것을 우려했다.

"보육원 출신 아이들이 이력서를 내면 통과가 안 된대요. 소년원 출신하고 범죄자 취급을 같이 한다는 거야. 
정착을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나쁜 길로 빠지거나, 하다 하다 안 되면 자살 하잖아요. 자살이 많아요."

베이비박스 아동의 약 50%가 시설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목사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그가 준비하는 다음 단계는 시설을 나온 청년들의 사회 정착을 돕기 위한 달란트 학교다. 
직업 연계 대안학교 형태다. 보육원 출신 아동 중 64%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구상했다.

"ADHD는 장애가 아니에요. 한쪽만 바라보고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이 많아요. 
에디슨, 아인슈타인이 다 그래요. 달란트를 찾아주면 돼요. 전국 중소기업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적성 상담사를 불러서 자기가 제일 잘 하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스마트팜 유기농 기술까지 연계해서 시골에 정착시키려고 해요."

일산에 짓는다는 달란트 학교는 2026년 하반기 설계 착수 예정이다. 
그 외 영아일시보호소는 사단법인으로 이미 설립을 마쳤고
베이비박스 건물 1층에는 서너 명의 산모가 아이와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된 보살핌을 말이 아닌 자리로 증명해 왔다. 
아이가 들어오는 자리, 위기 산모가 머무는 자리에 이어 퇴소한 청년이 다시 설 자리까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베이비박스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순간이 올까요?

"제로는 안 돼요. 독일에도, 미국에도, 프랑스에도, 체코에도 1년에 30~40명은 들어와요. 
병원 밖 출산이라는 극한 상황은 어쩔 수 없어요. 한 명이라도 살려야 되니까 
그 한 명 때문에라도 존재는 해야죠."

난곡동 언덕길을 다시 떠올렸다. 세월이 흐르고 법이 만들어지고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에도 
그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파른 그 길을 17년째 오르내리는 이종락 목사가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2026년 3월 10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72분 55초간 진행됐습니다. 
인터뷰이의 발언은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리했습니다.
목록
이전글/다음글
이전글 [서울경제TV] 구본희 작가, 첫 개인전 ‘인 비트윈’ 성료…수익금 전액 기부
다음글 다음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