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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 생명이 담긴 상자의 무게 〈1148호〉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5-11-10   /   871
베이비박스를 찾는 그들

 

출생일을 꼭 적어주세요 

베이비박스 상자를 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구다. 상자 안에는 따뜻한 온기와 함께 폭신한 매트가 깔려있다. 베이비박스는 사전적 의미로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회의 시선은 엇갈린다. 일부는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고 비판하지만, 주사랑공동체(이하 주사랑) 베이비박스의 류은민 주임(이하 류 주임)은 ‘버려진’이나 ‘유기’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한다. 류 주임은 “이곳은 아이가 버려진 곳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지켜내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본지는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이 처한 현실을 조명하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제도의 필요성과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사진은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 모습이다.
▲사진은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박스 모습이다.

베이비박스란 

① 베이비박스의 현황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는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교회’와 경기도 군포의 ‘새가나안교회’로 단 두 곳뿐이다. 모두 국가가 아닌 민간에서 시작됐다. 2014년부터 운영된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로 보호된 아이는 총 146명이다. 201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주사랑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된 아기는 총 2,195명이며, 그중 316명(16.8%)은 원가정으로 돌아갔다. 이 대목은 베이비박스가 단순한 ‘유기의 상징’이 아닌 ‘생명을 지키는 장치’임을 보여준다.

사단법인 ‘비투비’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들의 상담일지 5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부모들의 주요 공통점으로 △경제적 빈곤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 △주거 불안정 등 구조적 한계에 놓여있음을 표명했다. 주사랑의 2018부터 2025년 통계에 따르면, 부모의 52.9%가 ‘20대’였으며, 69.5%는 ‘미혼 부모’였다. 이들 대부분은 산모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여성이었다. 

② 베이비박스의 보호 체제
베이비박스에는 아이가 들어오면 즉시 알람이 울리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알람이 울리면 보육교사가 내부에서 신속히 박스를 열어 아이가 10초 이내로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도록 조치한다. 동시에 상담사는 밖으로 나가 산모에게 아이를 지켜준 것에 감사를 전하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상담을 진행한다. 

베이비박스에 보호된 아이는 △위탁 △입양 △시설 세 가지 진로에 놓인다. 류 주임은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라며 베이비박스의 방향성을 전했다. 이어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에 머무르거나 일을 병행해야 할 경우, 출산 후 양육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경제적 어려움이나 불안한 주거환경, 사회적 시선의 두려움 때문에 양육이 어려운 산모가 많음을 내비쳤다. 이때 베이비박스는 보호를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아이를 위탁하며, 산모가 삶을 정비하고 다시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류주임은 “산후우울증이나 사회적 압박감으로 순간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베이비박스에서 아이를 잠시 돌봐주면, 산모들이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입양의 경우, 산모와의 상담 및 행정 절차 안내를 통해 베이비박스의 일시적 보호를 거친 후 이뤄진다. 반면 출생신고조차 어려운 경우에는 입양이 불가능해 아이는 신속히 보호시설로 이송된다. 류 주임은 “아이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2~3일 내에 이동을 조치한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는 단지 ‘보호의 공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상담과 지원을 통해 산모의 자립을 돕고, 보호 종료 청년들에게는 결연금 지원, 생일 선물 전달 등 정서적 · 경제적 도움 또한 제공한다. 류 주임은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와서도 베이비박스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또 하나의 집, 가족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사진은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의 건물 모습이다.(제공/ 주사랑공동체)
▲사진은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의 건물 모습이다.(제공/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찾는 그들

① 기로에 놓인 산모들
주사랑에 따르면, 베이비박스를 찾은 산모 중 병원 밖에서 출산한 비율은 2018년부터 2025년까지 평균 13.2%에 달했다. 산모들은 왜 위험을 감수하며 병원이 아닌 △고시원 △모텔 △자가분만 △친구집 △화장실 등에서의 출산을 선택할까.

KBS 시사다큐 <또, 아기가 왔다>(이하 KBS 다큐)에서 사단법인 비투비의 김윤지 대표(이하 김 대표)는 “병원에 갈 돈이 없다기보다 병원에 가면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두려움 때문이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즉 이들의 선택은 ‘임신과 출산’을 철저하게 숨기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신분 노출의 두려움만이 그들을 베이비박스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류 주임은 “많은 산모들이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지지받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며 “부모에게조차 임신 사실을 알리기 어려워 홀로 고민하다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산통이 와서 병원에 가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신체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출산 직전에야 현실을 인지하는 이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영란 전 주사랑 상담사는 사단법인 비투비의「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서 베이비박스를 찾는 부모들을 ‘대부분 사회 시스템 밖의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중퇴하거나, 부모와 사별했거나, 학대와 불화 속에서 홀로 생계를 이어가던 청년들이 많다”며, “그 과정에서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남자가 떠나거나 관계가 단절되면서 베이비박스를 찾게 되는 경우가 잦다”고 설명했다.

② 지켜진 아이들

“난소 수술을 받는 동안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잠시 맡겼다가 수술 후 다시 데려간 엄마. 

거제도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친정아버지가 불법 입양을 강요하자 아이를 지키기 위해 도망쳐 베이비박스를 찾은 엄마.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이 떠난 뒤 홀로 출산해 부모의 허락을 기다리며 잠시 아이를 두고 간 미혼모.” 

                                                                                                           -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 中

베이비박스에 담긴 사연은 흔히 ‘유기’로 여겨지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사정과 절박한 선택의 흔적이 있다.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속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16시간 동안 배를 타고 온 산모의 이야기에 대해 주사랑 이종락 목사는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신생아는 비행기를 탈 수 없다. 이에 먼 길을 배 타고 와서 베이비박스에 두었다는 건 모성애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프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의 아기를 다시 데려가는 부모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출처/ 주사랑공동체)
▲그래프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의 아기를 다시 데려가는 부모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출처/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는 이들의 결정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베이비박스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겼다가 다시 데려가는 부모의 비율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전체의 약 30%에 달한다. 이는 ‘버림’이 아니라 ‘보호’를 위한 임시적인 선택임을 시사한다. 이어 사단법인 비투비는 ‘부모들이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베이비박스를 찾는다는 점은 베이비박스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 설명했다. 

 

출생통보제 그리고 보호출산제도

지난해 7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가 함께 도입됐다. 이는 태어난 모든 아이가 사회의 보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변화였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자동으로 통보함으로써 출생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아동이 유기나 학대 등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이 제도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병원 출산을 꺼리는 산모들에게 병원 밖 출산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함께 시행된 것이 「보호출산제」다. 이는 미혼모나 미성년자 등 사회 · 경제적 위기에 처한 임산부가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다. 익명으로 출산과 출생신고를 허용해 산모의 신분 노출을 방지하고, 병원 밖 출산과 영아 유기를 예방하려는 취지이다. 

「보호출산제」의 발의 과정에 직접 참여한 주사랑은 이 제도에 대해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불안해진 미혼모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는 보완 장치”라고 설명했다.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위험한 자가 출산이 늘 수 있다”며 “보호출산제는 익명성을 보장하면서도 산모와 아이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라고 강조했다.

유사 이래 우리나라는 출산과 출생 신고를 개인의 책임에 맡겨왔다. 미혼모가 정부의 양육 지원을 받거나 입양을 보내려면 반드시 신원을 공개하고 출생신고를 해야만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제도권 밖에서의 출산을 선택하거나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이기도 했다.「보호출산제」 발의를 주도한 김미애 의원은 “프랑스는 1941년부터 「익명출산제도」, 독일은 2014년부터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신뢰출산제도」를 운영하여 매년 500~600명의 아기를 보호하고 있다”며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정치도, 이념도 없다.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 발의 당시, 「보호출산제」는 ‘아이를 쉽게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라는 반대 여론으로 인해 발의 과정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아이의 생명 보호와 안전한 출산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라는 점이 인정돼 법제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보호출산제」는 산모와 아이의 사회적 권리 보호망을 구축하려는 정부 노력의 첫 일환이다. 

류 주임은 “아직은 시행 1년 차로, 제도가 어떻게 정착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공공 제도는 절차가 복잡해 산모들이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이어 “베이비박스는 ‘선 지원 후 행정’ 방식으로 긴급한 상황에서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정부 시스템은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올해부터 개정된 입양법이 「보호출산제」와 맞물려 운영되고 있기에, 류 주임은 “향후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시점”임을 전했다.

 

제도 및 사회적 인식 제고의 필요성

KBS 다큐에서 김 대표는 “비록 어려운 사회 구조 속에 놓여 있더라도 다시 아이를 품에 안는 부모가 30%에 달한다는 건 그만큼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는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실마리”라고 말했다. 이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결심이 달라진다”며, 결국 핵심은 ‘제도의 부재’가 아니라 ‘공감의 부재’일지 모른다고 논했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에 산모들은 큰 심리적 충격을 받거나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류 주임은 “베이비박스 측에서 ‘아이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전할 때 울음을 터뜨리는 엄마들을 자주 본다”며 “상담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일시 보호 기간 동안 이성적으로 고민한 끝에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공감과 이해의 필요성을 전했다.

서울시립대학교 법학연구소의 「영아의 생명권을 위한 규범적 고찰」에 따르면, 익명 출산을 제도화한 독일 등 유럽의 경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 규모가 국내에 비해 월등하고, ‘미혼모’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한부모 · 비혼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거의 없고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의식이 개방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문제의 양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제도 마련과 더불어 사회 인식 개선을 병행할 필요성이 드러난다. 

주사랑 역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과제로 ‘인식의 전환’을 꼽았다. 류 주임은 “미혼모와 그 자녀를 향한 편견과 질타는 여전히 강하다. 이로 인해 많은 미혼모들이 ‘내가 그때 아이를 키우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자책을 안고 살아간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의 탄생은 어떤 경우에도 귀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 생명을 축하하기보다 비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입양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입양한 가정을 향해 ‘대단하다’고는 말하면서도 ‘축하한다’고는 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 인식의 단면”임을 짚었다.

 

주사랑은 ‘베이비박스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그 길의 시작은 누군가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그 선택을 믿어주는 일에서 비롯된다. 베이비박스는 우리 사회가 생명과 돌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따뜻하면서도 첨예한 공간이다. 이 상자를,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를 잠시라도 존중과 축복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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