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배인 저출산 시대에도 ‘품을 잃은 아이들’이 있다. 친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유기된 아이들. 그리고 부모가 방임한 아이들까지.
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
올해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두 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우리 주위엔 여전히 미아처럼 품을 찾아 떠도는 아이들이 있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뭘 감내하며 살아왔을까.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두고 가도록 마련된 상자)를 500시간 동안 관찰하고, 품을 찾아 떠도는 0~29세 아동·청년 47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말한다. “미안해 아가야.”
미아 - 품을 잃은 아이들
[1] 베이비박스에 놓인 유준이
산부인과 분만실의 바퀴 달린 이동식 침대, 산동네 언덕배기 ‘베이비박스’의 나무 침대를 거쳐 아동일시보호소의 침대에 지금 막 도착했다. 중간에 잠시 들렀던 병원 검진실과 수유실, 상담실의 침대까지 포함하면 사흘간 옮겨 다닌 침대는 6개나 된다.
유준이가 거쳐 간 품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유준이를 가장 먼저 품었다가 가장 먼저 떠난 사람은 엄마다. 9월 2일 오전 11시 22분 엄마 배 속을 나온 유준이는 병원에서 두 밤을 보냈다. 소나기가 남긴 축축한 습기를 맡으며 퇴원한 아이가 향한 곳은 엄마의 집이 아니었다.
차로 40분을 달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베이비박스에 도착했다. 작은 십자가가 솟은 붉은 건물 외벽에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아이를 안은 엄마가 반층 계단을 올라 현관에 들어서자 플라스틱 차양 밑으로 푸른빛이 비쳤다. 하늘색 앞치마를 입은 보육사가 나왔다.
“그래도 좀 있으면, 내일 아침이면 나가니까….”
보육사는 아이에게 공갈젖꼭지를 다시 물렸다. 부모가 있지만 없는,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유기아동 유준이 인생의 여정은 이렇게 출발했다.
유준이가 겪은, ‘인수인계’
날이 밝았다. 전화를 받은 관악경찰서 난우파출소 경찰관이 베이비박스를 방문했다. 2009년 말 만들어진 베이비박스는 법적 근거가 있는 아동보호시설이 아니라 비인가 시설이다. 엄마가 아이를 두고 간 ‘영아 유기’ 범죄가 벌어졌다는 ‘신고 전화’는 그렇게 차분했다.
폐쇄회로(CC)TV 8대로 둘러싸인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무턱대고 버리는 부모는 이제 거의 없다. 24시간 상주하는 직원과 상담한 뒤 아이를 두고 떠나는 부모들이 영아 유기 범죄자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에 아이를 맡긴 것인지를 놓고 지금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경찰과 서울시, 정부 등 관계기관은 아이를 버린 엄마와 아이를 거둔 주 사랑공동체를 묵인했고, 2000명이 넘는 아이가 이곳을 거쳐 갔다.
유준이를 만나러 출동한 경찰관 역시 차분했다. 그는 “아이를 버린 엄마가 누구냐”고 캐묻지도, CCTV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익숙한 일인 듯 아이의 이름, 생년월일, 예방접종 여부만 물으며 몇 줄의 진술을 받았을 뿐이다. 그는 아이 사진을 찍고, 아이 입에 면봉을 넣어 DNA(유전자)를 채취하고는 파출소로 복귀해 영아유기발견통보서를 작성했다.
“분유는 9시에 35밀리리터 정도 먹었어요. 애가 혀가 조금 말려서 분유를 잘 못 빨아요.”
유준이를 겉싸개로 감싸 품에 안은 보육사가 밤새 파악한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아이의 이삿짐은 엄마가 입혔던 옷과 분유가 담긴 종이가방,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수유패드가 전부였다. 승합차에 이삿짐을 옮기는데 5분이면 충분했다. 듬직한 체격의 아동보호전담요원 박경태 씨가 아이를 넘겨 들곤 익숙하게 받쳐 안았다.
이들은 서초구 시립어린이병원을 먼저 들렀다. 박 씨가 이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올 땐 마음이 늘 불편하다. 보통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진 혈액검사라는 걸 받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친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아이는 신생아라도 혈액검사를 받아야 했다.
생후 사흘 된 유준이는 혈관이 잘 잡히지 않았다. 의료진은 성인 손가락만 한 팔뚝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 머리에서 피를 뽑기로 했다. 아이는 분유를 게워가며 울고 또 울었다. 채혈은 30분이나 걸렸다.
1층 상담실에 도착한 박 씨는 각종 서류와 물품을 넘기고, 아동신병인수인계서에 서명한 뒤 텅 빈 유아차를 승합차에 싣고 떠났다. 센터 직원들은 유준이를 2층 신생아방 침대로 옮겼다. 보육사가 기저귀를 열어보는 동안 유준이가 모빌 아래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편하게 해줄게요. 다 됐어요~”
새 배냇저고리와 속싸개가 몸을 덮자 비로소 안정을 되찾은 아이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유준이는 몰랐다. 한 주 후 이사를 또 해야 한다는 것을.
“오구 오구 이뻐라. 세상에, 세상에나.”
5명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놀란 유준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본지 20년 차인‘베테랑’ 김 팀장은 스마트폰을 유준이의 얼굴 앞으로 가져가 사진을 찍었다.
“목소리가 크십니다? 존재감이 있는데?”
“애가 표현이 확실하더라고요.”
“어머나 예뻐라!” 여기서도 똑같은 탄성과 절차가 이어졌다.
“이 아이는 황달이 있어요?”
회색 수녀복을 입은 노은희 원장이 유준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일주일 새 조금 빠지긴 했지만, 아이 얼굴은 여전히 노란빛을 띠었다. 신생아들이 머무는 4층 방으로 옮겨진 유준이를 먼저 와있던 형들 옆에 보육사가 눕혔다. 간호사는 센터에서 들려준 주의사항을 전하며 세 번째 인수인계를 마무리했다. 보육사는 아이의 귀에 체온을 재고, 한 번 더 사진을 찍고, 온수에 씻기고, 배냇저고리를 갈아입혔다. 벌써 유준이가 누운 네 번째 잠자리다. 또다시 낯선 곳에서 칭얼거리던 아이는 젖병을 물리자 이내 잠잠해졌다.
“빠는 힘은 좋네.”
보육사는 혼잣말을 했다.
아이 앞에 펼쳐진 두 갈래 인생
신생아방엔 이미 두 아이가 있었다. 보육사 한 명이 돌볼 수 있는 신생아는 최대 두 명이다. 유준이가 오면서 정원을 초과한 것이다. 그래도 아이를 받아야 했다. 서울에서 베이비박스 남자아이를 우선적으로 받는 양육시설은 성모자애를 포함해 3곳뿐이었기 때문이다.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 앞으로 많은 서류가 만들어졌다. ‘미상’으로 기재됐던 본적은 성본창설이 마무리되면서 ‘한양 이 씨’로 정해졌다. 출생신고는 노원구청에서 생후 44일에야 이뤄졌다.
가장 어려운 단계는 지금부터다. 지난해 아동보호정책이 개편되면서 ‘가정형 보호 우선’ 원칙이 도입됐다. 최우선은 원래의 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일반적인 가족에 가장 가까운 ‘입양’, 다음으로 일시적으로 아동을 맡아 기르는 ‘가정위탁’, 그리고 소규모의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을 차례대로 고려해야 한다. 흔히 보육원이라 부르는 아동양육시설은 이 모든 게 불가능할 경우 선택하는 마지막 ‘집’이다.
유준이가 온 성모자애는 마지막 순위인 보육원이다. 아직 종착지는 아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입양이 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 네 곳 중 하나가 성모자애다. 지난달 21일 유준이는 ‘입대확인서(입양대상아동확인서)’를 받았다. 그새 황달기가 완전히 빠지고 토실토실하게 살도 올랐다. “생후 80일 만에 나온 거니까 예전보단 훨씬 빨라진 편이에요” 김윤현 팀장이 말했다. 유준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옆자리에 있었던 형은 벌써 예비 양부모를 만났다.
유준이의 ‘선배’ 아이들
부모가 “당장 키울 수 없으니 잠시 맡아달라”며 맡긴 아이까지 포함해,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2012년 79명에서 이듬해 252명으로 치솟았다. 출생아 10만명당 아이 수로 따지면 58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2018년 66명까지 올랐다가 다소 줄었지만 지난해에도 여전히 42명이었다.
그렇게 성모자애로 넘어온 아이들의 눈엔 불안감이 자주 비쳤다. 때때로 조증(躁症)이 온 것처럼 조급하고 예민해졌다. 명랑한 아이는 숨이 넘어갈 듯 깔깔댔고, 화가 많은 아이는 수류탄처럼 위험해졌다. 아이들은 일상에서 늘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다. 하지만 너무나 거칠게 갈구한다는 게 문제였다. 날이 우중충하거나 비가 오면 아이들의 예민함은 더 극에 달했다.
“다녀왔습니다!”
하교한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가 신발주머니로 풍차를 돌리며 악을 썼다. 유준이처럼 베이비박스에서 이곳으로 온 아이다. 웃옷은 바지에서 삐져나왔고 가방도 절반쯤 열렸다. 저 상태로 방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며 싸울 것이 분명했다. 노 원장이 아이를 붙잡고 찬물과 과자를 주며 진정시켰다.
“자자, 신난 건 알겠어. 그러다 울지도 몰라. 일단 물 좀 마셔라.”
조금 뒤 발을 구르며 들어온 2학년 남자아이는 눈썹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얼굴로 혼자 씩씩댔다. 생활관은 4층이었지만 분기탱천하는 화를 이길 수 없었는지 엘리베이터를 그냥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꽝꽝’하고 부서져라 계단을 밟는 소리가 회랑에 울렸다. 김 팀장은 휴대전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선생님. 방금 올라간 아이 좀 얼굴이 안 좋아요. 잘 보셔야겠어요.”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감정조절에 애를 먹었다. 선생님들도 종종 성모자애에 ‘SOS 전화’를 걸었다. 한 아이가 수업 시간에 가벼운 지적을 받자 책상을 밀치고 유인물을 갈기갈기 찢은 다음 날이었다. 담임 교사는 통화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집(보육원)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솔루션 같은 게 있으면 페이퍼(문서)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매일 바뀌는 엄마, 자꾸 떠나는 이모
‘아이들은 무슨 일을 겪고 있는 걸까.’총신대 사회복지학과 오혜정 교수는 올해 초 성모자애 등 서울 시내 양육시설 34곳에 사는 베이비박스 아동에 관해 연구에 착수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아동양육시설 평가위원으로 현장 조사를 다니면서 동료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아서다.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베이비박스 아이들이 좀 어려움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결과가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인 ‘생활지도원’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에 대한 조사였다. ‘가장 짧게 생활한 사람과 보낸 시간’을 묻자 “1년이 되지 않는다”라는 아이가 73%나 됐다. 제일 길었던 사람과 보낸 시간은 ‘3년 미만’이 절반이었다. 오 교수는 “이렇게 자주 바뀔 줄은 몰랐는데, 숫자를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너의 존재를 알았을 때 정말 죽을 것 같았어.”
“10개월 동안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텐데 미안해.”
“좋은 것만 먹고 행복한 생각만 하는 다른 엄마들이랑 달랐으니까….”
그 이야기를 듣는 오 교수의 마음은 복잡했다. 그에게도 아들이 있다. 엄마가 얼굴을 찌푸린다거나 잠시 먼 곳에 다녀온다고 해도 아들은 “엄마가 날 버린 걸까”라는 의심을 떠올릴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 교수가 조사한 아이들은 달랐다.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떠나지 않는 존재여야 하는데, 아이들에겐 그런 사람이 없었다. 한 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를 왜 버리고 갔어요?”
성모자애 직원들은 첫 베이비박스 아동인 준서(가명)와 민서(가명)가 들어왔던 2013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생아를 볼 일은 드물었는데,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갓난아기가 6명이나 들어온 것이다.“첫해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사랑을 진짜 많이 받고 자랐거든요.”
아이들은 다달이 차례대로 들어왔고, 보육사들도 비록 교대로 근무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사랑을 쏟아줄 여력이 충분했다. 김윤현 팀장도 사무실 직원들과 쉬는 시간마다 “막둥이 보러 가자”라며 우르르 올라가 앞다퉈 안아주고 얼러줬다. 생애 첫 100일 동안 온 식구들의 관심을 담뿍 받은 아이들은 당차고 호기심이 넘쳤다.
2014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매년 두 자릿수씩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생활지도원 혼자서 젖먹이 7명을 돌봐야 했고, 준서·민서와 같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긴 어려웠다. 분유를 먹이고 잠을 재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저는 엄마 아빠가 없는 줄 알고 선생님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엄마 아빠가 바빠가지고, 그래서 저를 여기에 잠시 내버려 둔 거라고 했어요.”(건우·9·가명)
‘이모’들은 아이들이 ‘낳아준 엄마와 아빠’에 관해 물어올 때마다 대답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베이비박스’라는 단어를 먼저 언급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눈치 빠른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4학년생 여자아이들의 스마트폰을 살펴보던 김 팀장은 검색기록에 ‘베이비박스’, ‘미혼모’ 같은 단어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어른들이 답해줘야 할 아이들의 질문은 결국 한 곳으로 귀결됐다.
“엄마. 아빠. 나를 왜 버리고 갔어요?”(민서)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미아: 품을 잃은 아이들’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해 차별화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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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조유라 이승우 조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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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하승희, 양충현 기자 ▽그래픽: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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