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에서 발견되는 충격적인 영유아사건으로 마음이 아프던 중, 지난주 경찰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친모를 아동유기 혐의로 입건했다는 기사는 가슴을 철렁하게 한다. 베이비박스는 미혼모나 원치 않은 출산을 한 산모의 마지막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감사원은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2015~2022년까지 의료기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가 2,236명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전수조사를 시행했고 경찰에 의뢰하며 전국적으로 영유아 유기 및 살인이 밝혀지며 사회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베이비박스에 놓고 간 친모까지 찾아내어 입건까지 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유기하는 것이 불법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럼 경찰이나 정부나 우리 사회는 그들을 선도할 수 있는 어떠한 대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입건한 것인지 묻고 싶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는 것조차 못한다면 친모의 선택은 한 가지만 남는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길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불법적인 문제를 떠나 아이를 두고 가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서 수천 년을 내려온 문화이다. 가난하여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되는 경우나 원하지 않은 출산을 한 경우에 마을에서 아이를 원하지만 출산하지 못한 집 문 앞에 생일을 적은 쪽지와 함께 놓고 가는 것은 모든 시대에 있었다. 이런 베이비박스를 법적인 잣대로 공식적으로 불법화시키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며 향후 미혼모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 것이기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그나마 베이비박스는 사회가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를 종교단체가 해결을 해주면서 시작됐다. 어린 나이에 출산하고 감당할 수 없어 살해한 경우가 속속히 밝혀지는 과정 속에서 그래도 베이비박스를 선택한 친모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입건을 했다는 것은 향후 어린 임신부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출구 없는 처벌은 선택이 적은 어린 그들을 사지로 내몰기 쉽다. 경찰의 단편적 과잉 대응은 풍선효과로 더 큰 희생자를 양산할 것이 걱정된다. 어려서든 실수든 감당할 수 없는 임신을 하고 출산한 경우에 정부가 처벌 일변도로 진행하면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사라진다. 결국 사회가 그들을 사지로 내몰게 된다. 베이비박스는 처벌이 아니라 양성화시켜서 어쩔 수 없는 산모들이 영유아를 불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제도권 안으로 품어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그렇게라도 최소한의 역할을 유지하던 것을 아동유기로 처벌하면 베이비박스의 선한 기능이 사실상 유해되어 버린다.
이번 사건으로 국회는 의무적으로 의료기관이 출생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은 미혼모가 의료기관을 기피하는 현상을 유발시켜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근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보호출산제를 논의 중에 있다고 한다. 미국은 영아피난제로 생후 72시간 또는 50일 이내에 유아를 피난소에 유기하는 경우에는 법적인 책임을 면책하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독일은 비밀출산제를 시행하고 있고, 프랑스 등 몇몇 유럽 국가는 산모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으며 안전하게 익명으로 출산하고 원하면 아이를 두고 떠날 수 있는 익명출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런 선진국 환경에 비하면 우리는 국가가 어린 임신부를 보호하여 주지 못한 것을 반성해도 시원치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었던 베이비박스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경찰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과연 이런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
얼마 전 모임에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선진국이라 생각한다는 사람이 다수였다. 지금 다시 한번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어린 미혼모들에게 길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그들을 다시 사지로 내모는 이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경찰은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간 산모를 입건한 것을 철회해야 한다. 한 명의 입건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만든다면 잘못된 법 집행이다. 인명이 법보다 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