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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베이비박스로 오는 아기, 한국이 유독 많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3-07-14   /   Hit. 1902
전국 두 곳의 베이비박스에 12년간 1천990명…연 150~180명
유럽 국가들은 익명출산제도 운영…프랑스 매년 800~900명 익명출산
베이비박스·익명출산은 대부분 취약계층 여성…익명출산제 도입후 영아 살해율 감소 통계도


(서울=연합뉴스) 우혜림 인턴기자 = 최근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경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베이비박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감사원이 지난달 공개한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5년부터 8년간 태어난 국내 영유아 중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경우는 2천236명이다. 이 중 상당수는 베이비박스에 유기·위탁된 것으로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출생 미신고 아동에 대한 감사제보를 한 이다정 간호사는 지난 5일 CBS 라디오에서 "베이비박스 아기가 한 해 200~300명 되기 때문에 8년간 2천여명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며 "베이비박스에 애들이 너무 많이 오는 게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가 유독 많다고 볼 수 있을까?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베이비박스는 양육할 수 없는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는 시설로, 우리나라에는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처음 설치됐고 이어 2014년 5월 경기 군포시 새가나안교회에도 만들어졌다. 교회 벽에 달린 시설로 아기가 들어오면 벨이 울려 담당자가 즉시 아기를 보호하고 부모에게 상담을 비롯한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베이비박스에서 아기가 처음 발견된 2010년에는 그 수가 4명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이후 베이비박스에 대한 언론보도가 확산하고 입양 절차가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며 엄격해지면서 200명대로 늘어났다.

이는 그전까지 길거리 등에 유기되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서울 지역 유기아동 발생 수는 2008년 28명에서 2014년 229명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 이외 지역의 유기아동 발생 수는 174명에서 53명으로 크게 줄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이선형 가족정책 연구위원은 2015년 보고서 베이비박스 아동 실태 및 돌봄지원 방안에서 이러한 지역별 유기아동 수의 변화가 전국에서 유기되던 아동들이 서울 베이비박스로 몰린 상황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지역별 유기 아동 발생 현황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는 2011년부터 유기 아동으로신고됨. [출처=서울시여성가족재단 보고서. 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 수는 이후로도 연간 200명대를 유지하다가 최근에는 출생률 감소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등의 영향으로 줄어들어 10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2022년 6월까지 12년간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 수는 총 1천990명으로 한해에 150~180명 정도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영아를 양육할 수 없는 부모가 위험한 장소에 유기하지 않고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 맡길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평가와 양육 능력이 있는 부모까지 아이를 유기하도록 조장한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3년에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베이비박스가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베이비박스에 대해 익명 유기를 허용하는 조치라며 금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서울 베이비박스 아기 보호수
[출처=서울 주사랑공동체 교회. 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비박스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의 2016년 논문 영아의 생명권을 위한 규범적 고찰 등 학계 논문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의 기원은 유럽의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세기 유럽의 수도원과 보육원 담장에는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는 상자가 있어서, 외부에서 아기를 놓고 종을 울리면 내부에서 상자를 회전시켜 아기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19세기 말에 사라졌다가 2000년 전후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지금의 베이비박스로 재등장하게 됐다.

베이비박스가 설치·운영되지만 관련 법 규정이 없는 나라들이 많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처럼 베이비박스가 합법화된 나라도 일부 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독일, 체코, 이탈리아, 캐나다 등 대다수는 법 제도의 뒷받침 없이 사회적 관행에 따라 용인되고 있다. 다만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유럽 국가들에도 베이비박스 제도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독일 베이비박스 모습
[출처=독일 베이비박스 공식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비박스가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진 독일에는 2000년부터 10년 사이 약 100개의 베이비박스가 설치됐다. 한명진 대법원 재판연구관의 2019년 논문 독일법상 신뢰출산제도의 시행과 평가에 관한 소고에 따르면, 2010년까지 독일의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는 278명이었다. 인구수가 약 890만 정도인 오스트리아의 경우 2001년에 베이비박스를 공식적으로 허용해 2021년 기준 15개가 설치돼 있는데 맡겨지는 아기의 수는 연평균 3명 정도다. 인구수를 고려해도 우리나라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기 수보다는 훨씬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달리 이들 국가들에선 익명출산이 가능하다. 익명출산은 임신한 여성이 의료기관에서 자신의 신상정보를 밝히지 않고 출산한 후 아기를 위탁할 수 있는 제도다. 생모가 익명으로 아기를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베이비박스와 차이가 없고,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상담을 받으며 출산을 할 수 있어 베이비박스를 대체하는 방안으로 평가받는다. 익명출산은 베이비박스와 비슷한 시기에 도입돼 유럽 여러 나라들로 퍼졌다. 우리나라에선 이러한 제도가 없어 미혼모가 양육을 지원받거나 아기를 입양 보내려면 반드시 신원을 밝히고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베이비박스
[연합뉴스TV 제공]


독일은 베이비박스와 함께 익명출산을 용인하다가 2014년에 이를 보완한 신뢰출산제도를 정식으로 도입했다. 독일에서 익명출산으로 태어난 아기를 포함하면 2013년 기준 총 1천312명의 아기가 맡겨졌는데 이 중 베이비박스 아기는 3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신뢰출산제도를 통해 태어난 아기의 수는 제도 시행 이후 2018년까지 499명으로 알려졌다. 즉 독일에서는 연평균 100명 이상의 아기가 출생 직후 익명으로 맡겨진다고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001년 익명출산이 제도화돼 산부인과가 설치돼 있는 모든 병원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9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익명출산으로 태어난 아기의 수는 606명으로 연평균 30~4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베이비박스를 없애고 익명출산을 합법화한 프랑스에서는 매년 800~900명 정도의 아기가 익명출산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마다 인구수와 제도 운영 방식 등에 차이가 있어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출생 직후 익명으로 맡겨지는 아기의 수는 우리나라가 특별히 많다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베이비박스
[연합뉴스TV 제공]


익명출산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여성들이다. 김상용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2023년 논문 베이비박스, 익명출산, 신뢰출산-끝나지 않는 논쟁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1941년에 처음으로 익명출산에 관한 법 규정을 마련한 목적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의 아이를 가진 성매매 및 강간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재 프랑스에서 익명출산을 선택하는 여성 중 상당수는 불법체류 외국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의 베이비박스를 찾는 여성들도 출생신고를 하기 어려운 성폭력 피해자와 불법체류 외국인을 비롯해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10대 청소년과 20~30대 미혼모가 대부분이다. 앞서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놓고 간 사유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양육 곤란이 가장 많았다.

베이비박스 아동 양육 포기 동기
[출처=서울시여성가족재단 보고서. 재판매 및 DB 금지.]


익명출산을 찬성하는 측은 취약한 위치의 여성들을 보호하면 아동의 생명권도 보호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교정학회의 2021년 논문 한국 영아살해 고찰에 따르면 국내 46건의 영아살해 사건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취약한 미혼모로, 이들이 병원이나 사회복지기관에 도움을 구하지 못한 이유는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김성희 경찰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이 논문에서 영아살해를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익명출산 입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에서는 익명출산이 허용된 이후 영아 살해율이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베이비박스를 대체·보완할 방안으로 익명출산과 같은 취지의 보호출산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혼모에 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지 않아 익명출산제가 도입돼도 양상이 유럽과 다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언급한 연세대 법학연구원 논문은 익명출산을 제도화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경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 규모가 우리나라에 비해 월등하고 미혼모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등 한부모 가정과 비혼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거의 없어 영아유기 문제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환경이 한국과 다르게 개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익명출산 도입 시 미혼모·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과 인식 개선이 함께 요구된다.

미혼모 가명 출산 도입 검토…초기 지원도 강화(CG)
[연합뉴스TV 제공]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개선이 필요하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의 약 60~70%는 입양이 아닌 아동보호시설로 인도된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교회 사무국장은 "한국은 건강한 아이, 신생아만 입양하려는 경향이 있어 생모의 출산 정보를 모르는 베이비박스 아기들, 시설로 인도되어 자란 아동들은 잘 입양되지 못한다"며 "이러한 한국의 입양문화가 파양을 부추기고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외국에서는 입양아동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친생부모에 대한 알 권리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익명출산을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생모의 정보를 보관해 일정 연령에 이른 자녀가 이를 열람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생모의 동의나 재판 등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알 권리를 완전히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에 국가기관 등이 자녀와 생모를 연결해 편지를 교환하는 식의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자녀와의 통화 후 신분을 밝힌 생모의 비율이 절반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용 교수는 앞선 논문에서 "한부모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한 유럽 국가에서도 익명출산의 수요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며 "베이비박스나 익명출산을 이용하는 여성들에게는 서로 다른 다양한 동기와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5-2022년 베이비박스 보호 및 상담 후 아기 진로
[출처=서울 주사랑공동체 교회.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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