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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산모만 유죄? 처벌만이 답일 수 없는 영아 살해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3-07-05 /
Hit. 1779
얼마 전 감사원에서 충격적인 감사 결과를 내놨다.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감사 과정에서 출산은 이루어졌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 2236명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출생한 아동은 의무적으로 몇 종류의 예방접종을 받는데 이때는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되기 전이라 신생아에게만 발급되는 임시번호가 주민등록번호 역할을 대신한다. 그런데 매해 발급된 신생아 임시번호가 그해에 출생신고된 아동 수보다 많다는 게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헌재 판단 이후 멈춘 낙태 논의
그렇게 누락된 아이에 대한 실태조사를 위해 우선 몇몇 사례를 골라 예비적인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출산한 영아 두 명을 살해한 후 냉동실에 방치하던 여성이 적발됐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나머지 2000여명의 무적자(無籍子)에 대해서도 정부가 전수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추적과 처벌이 완수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애초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근본 원인인 원치 않은 아이는 계속 생길 수 있어서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모자보건법상 현행 낙태죄 조문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약 5개월) 이전까지의 임신중절은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게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호에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니 22주 이전의 낙태에 대해서는 적절한 요건을 만들어 임신중절을 허용하도록 법률을 개정토록 했는데 낙태를 전면 비범죄화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이 힘을 얻으며 국회에서는 관련 입법을 아예 포기해버렸다. 결과적으로 헌재가 설정한 유예기간이 도과하자 낙태죄는 폐지됐고 2021년부턴 모든 종류의 임신중절에 대한 처벌 규정이 사라져 비범죄화됐다.
당장 현재 시점에선 낙태에 대해 아무런 처벌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게 맞는다. 그러니 여러 이유로 임신중절을 택한 여성들에게 좋은 일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로 그러질 못했다. 헌재에서 판단한 합법적 임신중절의 범위를 벗어나는 임신중절에 대해 국가가 지원하거나 보조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관계 기관들이 책임질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먹는 임신중절 약물인 미프진이다. 해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사용 중인 비교적 안전한 약물이고 임신 초기에 큰 부작용 없이 임신중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임신중절 방법으로 가장 권장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렇게 훌륭한 약이지만 국내에선 아직도 식약처에서 시판허가를 받지 못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약을 허가받고자 신청했던 모 제약회사가 자진해서 허가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다르다. 헌재가 판시한 범위 바깥에서의 낙태에 이용된다면 자칫 식약처가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가 임신중절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문제다. 국내 보건의료체계의 판단을 따르면 임신중절 수술은 의학적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필수 의료행위다. 그러니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비용과 시술 방법 등에 대해서는 국가 통제를 받는 게 맞는다. 그렇지만 식약처의 사례와 같은 이유로 임신중절 시술은 여전히 음지에서만 수행되고 있으며 임신중절 시술을 수행하는 의료기관 정보도 암암리에 전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는 여전히 침묵 중이다. 낙태죄를 개정 입법해서 합법적 낙태의 범위를 정하려고 하니 진보성향 여성단체들의 비난이 두렵고 보건 관련 부처에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법적인 테두리를 만들어주려니 보수적인 교회의 반발이 찜찜해서다.
낙태의 확실한 대안, 베이비박스
이런 환경에서 임신중절의 기회를 놓친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도 차마 기를 자신이 없어 제 손으로 아이 숨을 끊는 상황이 발생했다. 명백한 불법이고 처벌받아야 할 범죄이지만 영아살해라는 범죄로까지 치닫기 전에 이들을 도왔어야 할 국가의 책임도 그만큼 분명하다. 법적인 회색지대(gray zone)를 지금처럼 방치할 게 아니라 마땅히 져야 할 입법 책임을 져야만 한단 것이다.
생명 윤리적 어려움이 이유가 됐건 정치적 셈법에 따른 표 계산이 부담됐건 간에 낙태죄라는 뜨거운 이슈를 건드리는 게 힘들다면, 다른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 아이를 기를 형편이 안 되는 산모를 대신해 아이를 길러줄 수 있는 베이비박스(Baby Box)나 익명출산제 같은 제도다. 현재는 주로 기독교계 민간단체들이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양육권 포기 문제 등 아직도 법적인 부분이 미비해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러니 본래 이 역할을 수행해야만 할 국가나 공공이 지금이라도 나서 버림받을 아이들을 거두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면 낙태죄 의제를 다루는 것과 달리 별다른 윤리적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도저히 아이를 기를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패륜(悖倫)적인 영아살해보다는 나은 선택지라서다. 그렇지만 이런 정책이 쉬이 도입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아동보육시설의 재정적 여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워서다.
정부는 2015년부터 정신질환자를 위한 정신요양시설, 노인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직접 재정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보육원(옛 고아원) 같은 아동 보육 시설은 국가 재정 지원 대상에서 빠져 지자체에만 재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베이비박스와 같은 시도를 하고 싶어도 무턱대고 보호 아동을 늘리는 게 보호시설의 지속 가능한 운영에 지장을 준다면 정책 추진은 불가능하다. 낳은 부모도 키울 여력이 없고 맡아서 키워 줄 국내 보육시설도 여력이 없다면, 태어난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은 결국 해외뿐이다. 저출산 국가에서 아이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다.
국내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대통령 직속 기구가 운영된 지도 벌써 19년째다. 그 기간에 국내의 저출산 문제를 두고 무수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원인과 해법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태어날 아이를 늘리는 것엔 모두 실패했다는 걸 이젠 모두가 알고 있다. 저출산 극복 방안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대신 이미 태어난 아이들, 특히 양육자의 부재로 보육시설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더 잘 보살피는 건 무리일까.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한 어머니를 수사하고, 출생신고 책임을 의료기관이나 공공기관에 부여하자는 구체적 논의도 좋지만 더 너른 방향에서의 문제 해결이 얘기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