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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가리사니] 버려진 아기, 지켜진 아기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3-07-03   /   Hit. 994
김유나 사회부 차장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그나마
안전…유령 아기 없도록 법과
제도가 역할 다해 생명 지켜야

2012년 12월 약 3주 동안 매일 아침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았다. 전날 밤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가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아기들은 대부분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대, 골목길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다.

그해 8월에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시행됐다. 당시 개정안은 부모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고,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려야만 입양기관을 거쳐 가정법원의 입양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법 개정 이후 유기된 아기가 늘었는지 확인하는 게 내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그해 12월에만 5명의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12월 25일에도 새벽에 아기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주사랑공동체교회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으며 부모의 선물을 기다리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성탄(가명)이는 크리스마스날 버려져 베이비박스로 들어왔다.

얇은 내의만 입고 베이비박스 속에 누워 있던 성탄이는 이곳에 오기까지 매서운 겨울바람을 얼마나 맞았는지 모를 정도로 온몸이 보랏빛이었다. 기저귀 대신 생리대를 찬 성탄이의 몸 곳곳에는 닦다 만 핏자국이 선명했다. 태어난 지 4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성탄이 엄마는 모텔에서 홀로 아이를 낳은 뒤 곧바로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사라졌다. 그마저도 친모가 아기가 태어난 날짜와 시각, 자신의 사연을 마지막 메모로 남겼기 때문에 알 수 있던 정보였다.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버립니다’. 베이비박스에 남겨진 아기들과 함께 발견된 메모에 공통으로 적혀 있던 글이었다. 사연도 다양했다. 10대 미혼모, 성폭행을 당한 여성, 아이 친모가 사라져 홀로 키울 수 없었다는 남성…. 누군가는 편지와 함께 아기를 두고 갔고 아이의 출생 시각과 몸무게, 혈액형조차 남기지 않고 도망치듯 떠난 이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당연하게 생기는 생일이 누군가에겐 허락되지 않던 것이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취지는 좋았다. 친부모 출생등록을 의무화해 불법 입양을 막는다는 취지였다. 법 취지는 좋았지만, 출산 기록이 남을까 출생신고를 꺼린 부모들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면서 유기 아동수도 크게 늘었다. 법 시행 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기가 한 달 평균 2~3명이었지만, 이후에는 2배로 늘어난 것이다. 당시 연간 20건 수준이던 서울 내 유기 아동 수는 법 시행 이후(8~12월) 41명으로 늘었다. 베이비박스 외에 공중화장실, 병원(출산 직후 도주) 등 장소도 다양했다.

11년이 지난 지금, 지난달 30일 ‘출생통보제’로 불리는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년 후에 시행되는 이 개정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거쳐 아이의 출생 사실이 지방자치단체에 의무 통보된다. 의료기관이 아기의 출생 정보를 심평원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출생통보제 역시 모든 아이를 국가 책임 아래 보호한다는, 좋은 취지의 법이다. ‘수원 냉장고 영아 유기 사건’처럼 국가가 손 쓸 틈 없이 사라진 ‘유령 아이’가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1년 전 성탄이를 통해 목격했듯, 좋은 취지의 법이라도 생겨날 부작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연간 100~200명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병원 밖 출산’이 풍선효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보호출산제’ 도입 검토뿐 아니라 한부모에 대한 인식 개선, 미혼모 지원 제도, 국내 입양 활성화 등 먼저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11년 전 기사에서는 베이비박스 아기들을 ‘버려진 아기들’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들은 베이비박스에서 그나마 안전하게 ‘지켜진 아기들’이었다. 친모의 손에 생을 마감한 채 냉장고에 유기된 수원 두 자녀, 출산 직후 방치돼 대전 야산에 유기된 아기. 이들이야말로 비참하게 버려진 아기들이었다. 법과 제도의 역할은 이들을 막는 데 있다. 모든 생명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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