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입니다. ○년 ○월 ○일생이고요. 저 조그만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엄마로서 자격이 없네요. 아이가 장애가 있어요.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염치없지만 저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 B형 간염은 1차 접종까지 했습니다. 엄마에게 새우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신비로움과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알게 해준 아기.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났단다. 너의 태몽은 예쁜 과일나무! 태어났을 때 몸무게는 3.32㎏이었단다. 너의 출생 정보들과…. 너무너무 작고 소중한 내 아기. 엄마가 미안하고 사랑해. 내 몫까지 행복하길 바랄게.”
“지금은 겁쟁이처럼 아이를 두고 가지만 차후에도 입양이 안 된 상황이라면 그때는 데려가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걸 아는지 잘 웁니다. 그만큼 사랑이 필요한가 봅니다. 정말 예쁜 아이입니다.”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를 너를, 빚더미에 앉은 내가 이 험한 현실에서…, 정말 많이 싸우다 결국 너를 이렇게 보내게 됐어. 나 또한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지만 너만은 온전한 울타리가 있는 가정에서 행복하게 보호받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미안해, 이쁘게 크렴’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교회(이종락 목사) ‘베이비박스’에 부모들이 남긴 편지들이다. 편지 원본은 아이가 보육시설에 보내지거나 입양을 갈 때 동봉한다. 편지는 아이와 부모를 연결하는 거의 유일한 기록인 셈이다. 부모는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 예방접종 기록을 남겼다. 편지엔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표현이 많았다. 입양 가면 양부모 가족에게 따뜻한 사랑 많이 받으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 능력이 되면 아기를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편지도 많았다. 2000여 통의 편지 중 눈물 자국이 남은 편지도 여럿이다. 장애아라 키우기 힘들고 아빠가 도망갔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보인다. 좋은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익명을 보장하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는 18세 소녀는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성인이 되면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꼭 다시 데려가 사랑해 주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미혼모도 “입양특례법 때문에 널 이렇게 보낸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구나. 너는 이해 못 하겠지만 이해해 주길 바랄게. 이쁘게 크렴. 사랑해”라고 적었다.
97% 부모가 상담 받아
19일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2009년 서울 관악구에 베이비박스를 처음 설치한 이후 지난 10일 기준 올해 32명, 지난해 106명, 2021년 113명, 2020년 137명, 2019년 170명 등 총 2073명의 아기가 들어왔다. 하루나 이틀에 한 명씩 아기가 보호된 셈이다. 협력 단체인 새가나안교회가 2015년 경기도 군포에 설치한 두 번째 베이비박스에는 올해까지 총 144명의 아기가 맡겨졌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사람의 대다수는 미혼모다. 근친상간이나 강간, 이혼가정이나 혼외 출생으로 인한 아기,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도 맡겨진다. ‘엄마’들의 나이는 20대가 51.9%로 가장 많고 30대가 28.3%, 10대가 9.4% 순이다.
베이비박스는 최대한 산모가 아이를 기르도록 상담한다. 홈페이지와 카카오톡, 전화 등을 통해 상담을 진행한다. 긴급한 상황이면 사회복지사들이 아기와 부모가 있는 곳으로 직접 출동하기도 한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지난해 97.2%의 부모가 상담을 받았다. 담임 이종락 목사는 “상담을 통해 원 가정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설득하고, 힘들겠다 싶으면 위탁가정이나 입양을 통해 아이가 가정에서 자랄 수 있게 권면한다”고 했다.
지난해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 106명 중 원 가정으로 돌아간 경우는 32명이었다. 입양이 9명, 보육원 등 시설에 입소한 아동은 65명이다. 교회는 아이를 다시 데려간 가정에 3년간 각종 지원을 제공한다. 지난해 1169명의 부모가 베이비키트를 지원받았고 168명이 생활비 지원을, 3명이 주거 지원을 받았다.
베이비박스는 생명 상자
이 목사는 2007년 겨울, 교회 문 앞에 생선 상자에 아기가 있는 것을 보고 키운 것을 계기로 ‘베이비박스’를 제작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놓고 간 아기들을 돌봐야 했다. 목회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소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교회는 재단법인 인가도 받았지만 여전히 복지시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만든 2012년 개정 입양특례법이다. 친부모를 쉽게 찾도록 하기 위한 취지이지만, 오히려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려 하도록 만들었다. 영아 유기를 부추기는 격이다. 입양 조건도 까다로워지면서 입양 아동이 감소하는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다.
교회는 베이비박스를 ‘생명 박스’라고 부른다. 베이비박스가 아니었다면 길거리에 버려졌을 아이들을 살린 공간이라는 의미다. 사회적으로 베이비박스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지지하지 않는 사람조차 베이비박스가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찾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교회 측은 베이비박스가 있기에 아이를 버린다는 주장에는 억울할 따름이다.
베이비박스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베이비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베이비박스가 아니었다면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보장시스템이나 미혼모, 한 부모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복지 단체의 도움을 받았을 부모들이, 베이비박스 때문에 ‘상자’에 아기를 버리는 손쉬운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실제 도움이 필요한 산모는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보건복지상담센터(국번 없이 129)를 통해 정부가 지원하는 경제적 지원과 산후조리 및 돌봄 서비스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지원은 출생신고를 통해 주민등록이 된 아이를 대상으로 제공한다. 따라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꺼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기를 선택하는 부모는 이용할 수 없다.
보호출산제 필요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기는 입양도 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산모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출산은 한마디로 ‘익명 출산’이다. 임산부가 일정한 상담을 거쳐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 보호출산제도는 2020년 국회에 발의돼 현재 계류 중이다.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부모에게 처음으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을 영아유기죄 혐의로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피고인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구체적 상황을 밝히며 베이비박스 측과 충분한 상담을 거쳤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초기엔 베이비박스를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며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찾아온 부모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아이들을 책임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영대 종교기획위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