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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열 나도 응급실 못가”···수애는 6년을 ‘지워진 아이’로 살았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3-04-18   /   Hit. 1813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 송창순씨 집에 수애의 책가방이 놓여 있다. 윤기은 기자


2016년 6월25일, 한 아이가 태어났다. 몸무게가 2kg 채 안됐던 아이의 이름은 송수애. 엄마 뱃속에서 6개월 만에 나와 곧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죠.”

지난 15일 경기 이천시 자택에서 만난 수애 아빠 송창순씨(49)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수애의 신생아 사진을 보여주며 연신 미소를 띠었다. 이제 일곱살이 된 수애가 냉장고에서 꺼낸 사과를 들고 송씨 곁으로 다가왔다. 지난달 초등학교에 입학한 수애는 아는 게 부쩍 늘었다. “사과는 애플. 선생님이 꽃이 열매가 되고, 씨가 나온대요. 근데 아빠, 이거 먹어도 돼요?”

수애네에 함박웃음이 번진 지는 1년이 채 안 됐다. 수애는 태어나서 6년 가까이 출생등록을 못했다. 송씨가 ‘비혼부’였기 때문이다. 송씨는 크게 다쳐도 응급실에 못갈까, 학교를 못 다니게 될까 마음 졸이며 딸을 키웠다. 그러다 2년간의 행정소송 끝에 수애의 주민등록번호를 겨우 얻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3일 혼인외 출생자의 신고는 ‘어머니’만 할 수 있도록 한 가족관계등록법 제46조 제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2025년 5월31일까지 혼외 생부도 자녀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다른 비혼부들도 별도 소송 없이 자녀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못 맞아 3년간 집에만…열 나도 응급실 못 가


집 벽면에 수애가 그린 그림. 윤기은 기자


송씨는 수애가 태어나고 며칠 후 주민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수애의 생모가 이혼한 지 300일이 안 됐기 때문이다. 민법에 따르면 이혼 300일 이내 태어난 자녀의 친권은 생모와 전남편에게 있다. 생부인 송씨에게는 출생신고를 할 권한이 없었다. 생모는 수애가 3살 때 집을 나가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수애는 ‘지워진 아이’로 살아야 했다. 민간보험은커녕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도 송씨의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겨우 등록했고, 원비나 보육비 지원은 받지 못했다.

수애가 3살 때, 처음으로 고열 증세를 보였다. 송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비약 먹이고, 열 식히려고 화장실 들어가 물 뿌리고 안아주고 밤새 그러니까 애가 지쳐서 자는 거예요. 열 좀 내려가니까 그제서야 방긋 웃고 좀 기어다니고.” 송씨는 응급실에 수애를 데려갈 수 없었다. 진료비가 비쌀뿐더러, 병원에서 신원이 없는 사람을 잘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날이 밝은 뒤에야 보건소에 데려가 열을 떨어뜨리는 주사를 맞힐 수 있었다.

수애를 진료해준 기관은 보건소와 집 인근 병원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송씨가 ‘아기수첩’을 들고 가 생부임을 증명하거나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며 알게 된 병원장에게 사정사정해 가능했다. 진료를 봐준 병원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처방받고 감기약을 타는 데까지 4~5만원씩 들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수애에게 특히 가혹했다. “정부에서 전화가 와요. 백신 맞으라고. ‘우리 아기 송수애 맞힐 수 있어요?’ 물어보면 ‘거기는 기록이 안 나오는데요’라면서 안된대요.” 마스크 물량 부족으로 2020년 3월부터 약 3달간 주민등록번호에 따른 마스크 부제를 실시할 때도 수애는 마스크를 살 수 없었다.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려웠던 송씨는 지난 3년간 수애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했다. 외식 한번 한 적 없었다. 다행히 수애는 지금까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

수애는 교육권도 누리지 못했다. 송씨는 아는 사람을 통해 수애를 어린이집에 겨우 등록했지만 보육료 지원을 못받아 월 60~70만원씩 내야 했다. 유치원은 경제사정에 따라 보내다 말다 했다. 수애가 학교 갈 나이가 다 돼가자 송씨는 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내 아기도 학교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어 못 간다”고 했다.

“출생등록은 아이의 ‘생존권’”


지난 15일 송창순씨가 경기 이천시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내가 죽으면 아기 출생신고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경찰서 앞에 갖다 놓고 도망가면 주민등록번호가 나와요. 근데 범죄자가 되면 딸을 못 보고. 베이비박스 운영하시는 목사님을 찾았죠. 목사님이 김지환 ‘아빠의 품’ 대표님을 소개해줬고, 김 대표님이 행정소송을 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송씨는 비혼부인 자신도 딸의 출생등록을 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낸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송씨가 생모의 신상을 알 수 있다는 점을 기각 이유로 들었다. 비혼부의 출생신고권을 보장하는 ‘사랑이법’(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2015년 생겼지만, 이 법은 생부가 출생등록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모친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로 제한한다. 2심에서 송씨는 “생부가 생모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 ‘생모의 소재를 알 수 없는 경우 등에도 생부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송씨는 수애의 출생신고서를 써낸 2022년 6월23일, 온종일 울었다고 했다. 올해 수애는 집에서 100m 떨어진 학교에 입학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육교사도 하루 한 시간씩 집에 방문해 수애를 돌본다. 송씨는 “무엇보다 아이의 꿈을 실현할 기회가 생겨 좋다. 교육받고, 사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됐지 않냐”며 “관련법 개정 작업이 남기는 했지만 헌재 결정으로 저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빠들도 아이의 생명권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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