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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베이스박스 찾아온 여린 생명… 희귀 심장병 치유의 길 열리길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3-01-04   /   Hit. 1166

베이비박스 운영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의 생명을 살리는 동행 <끝>

베이비박스에 온 아기 요한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큰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은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자의든 타의든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공통점 말고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들의 유형은 참으로 다양하다. 말하자면 임신을 한 사람들과 그 사유인데 으레 10대 미혼모를 금방 떠올리지만 20~30대가 80%를 넘는다.

미혼모가 물론 많다. 하지만 기혼자도 18%에 이르고 외도에 의한 임신출산도 10%가 넘는다. 그 중 4% 정도 되는 기타사유가 일정한 비율로 늘 자리를 차지하는데 그걸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날카로운 무엇에 찔린 느낌을 받는다.

베이비박스를 시작한 후로 마주했지만 피하고 싶은,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단어들이다. 성폭행, 강간, 근친 등이 대표적인데 이것들도 사실은 사연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또 다른 아픈 속내를 갖고 있다. 딱하고 안타까운 사정들 속에 감춰진 당사자가 지닌 고통의 무게를 우리가 감히 계량할 수 없다.

베이비박스는 그저 그 고통의 무게를 나눠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지만 우리는 흔히 볼 수 없는 기타사유 안에 또 일정하게 끊이지 않고 베이비박스를 찾아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불법체류 외국인이다. 언제인지 모르게 그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의 상수로 살고 있었다.

지난 여름이었다. 이십 대 후반 젊은 남자가 태어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다. 아이 이름은 요한이다. 멀리 지방 소도시에서 온 그는 요한이를 포기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대신 그는 간절하게 아이를 살리고 싶은 사연부터 털어놓았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형과는 연락이 끊겼다. 일가친척도 없이 홀로 살아온 그는 지방 소도시에서 건설일용직으로 근근히 살고 있다. 요한이 엄마는 동남아 국적으로 관광비자로 들어와 불법체류자로 남았다가 그를 만났다.

폐동맥폐쇄. 요한이가 태어날 때 진단받은 병명이다. 전체 선천성 심장병의 1~3% 안에 드는 희소성 질환이다. 태어나 20여 일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수술 말고는 다른 치료법이 없어 일단 퇴원하는 길에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고 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당장 가야 할 곳이 여기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런 이들이 찾아들 곳이 여기밖에 당장 떠오르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요한이는 6개월에서 1년 사이가 수술할 수 있는 시기이고 수술해야만 하는 시기다. 작은 원룸에서 생활하는 그들에게 당장 아이와 함께 살 환경이 필요했다. 서울 큰 병원에도 정기적으로 다녀야 해서 요한이를 우선 우리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그런데 집 문제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 중에 겨우 하나일 뿐이다.

요약하자면 아이가 태어났는데 희귀성 심장병이 있다. 아이 엄마는 불법체류자다. 아이 아빠는 혈혈단신에 가난한 일용직 근로자다. 그런데 아이는 생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반드시 최초의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비는 건강보험이 적용이 안 되면 억 단위가 필요하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문제의 시작이다. 외국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출생신고가 돼야 하고 출생신고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미혼인 한국아빠와 혈연관계임이 증명돼야 한다. 이를 위한 DNA증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DNA 채취는 반드시 공적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게다가 외국인 생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요한이가 한국 국적자가 아닌 외국 국적자에 의해 태어났음을 증명해야 한다. 해당 기관에서는 이를 위해 아이의 여권을 요구했다. 요한이 엄마의 불법체류로 인한 신상 문제는 요한이의 시급한 수술을 위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벌금도 강제 출국당해야 할 처지도 요한이의 목숨에 비할 수 없다.

요한이 엄마와 아빠는 서둘러 필요한 서류를 챙기기 시작했다. 혼인신고를 하고 병원 출생증명서도 제출했다. 시효가 지난 여권도 제출하기로 했다. 요한이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났다. 수술할 시기는 무르익었다. 남은 6개월 안에 요한이 주민등록번호가 나와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다 준비했지만, 아직 준비되지 못한 서류가 한 개 남았다. 아이 여권이다. 가장 빠른 방법은 엄마가 불법체류와 연관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본국에 다녀오면 된다. 그럴 각오도 되어 있는데 요한이를 담당하는 의사는 요한이의 심장이 비행기를 타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요한이 여권을 만들 수 없으니 여권을 대체하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설사 그게 나와주어 여권 문제가 해결되어도 접수 후 국적취득 완료까지는 3개월에서 6개월이 더 필요하다.

하루 일해야 하루를 먹을 수 있는 가정경제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요한이 수술을 위해 요한이 아빠가 베이비박스를 찾은 건 참말 잘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요한이를 맡아서 돌보는 한편 요한이가 기한 안에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백방으로 요한이 부모와 함께 뛰어다녔다. 그렇게 겨우 여기까지 왔다.

비록 요한이 이름으로 된 여권 문제 하나를 남겨두었지만 선천성 심장병에 걸린,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기의 생명을 위해 엄정한 법과 행정이 요한이가 살 수 있는 다른 길을 열어줄 것을 믿고 있다.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는 수술 및 치료 비용은 그 다음 문제다. 지금까지 그랬었고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셨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셨다. 나도 요한이도 별수 없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요한이가 반드시 수술받아야 하는, 마지막 기한을 알리는 시계는 멈춤 없이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요한이의 새해가 밝았다.

이종락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577589?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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