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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위기의 임산부에겐 아기 포기하지 않게 도울 버팀목이 필요하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2-12-30   /   Hit. 1081

베이비박스 운영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의 생명을 살리는 동행

서울 관악구 난곡동 베이비박스에 맡길 아기를 안고 오는 엄마의 모습(주사랑공동체 홍보 영상 중). 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2012년이었다. 어느 날부터 베이비박스로 아이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한 달에 두세 명 안팎이던 아이들이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아이와 함께 남긴 편지 내용은 비슷한 내용이 많았다. 새로 시행된 입양특례법에서 요구하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아이를 놓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의 임산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입양이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예외 없이 출생신고를 해야만 가능하도록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도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난곡동 언덕길을 거슬러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다. 아이를 놓고 돌아서는 부모를 어렵사리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이유가 법 때문이라는 사실이 의아했다. 이 상황에 법이 한몫했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상황은 우리가 예기치 못하게 돌아가고 있다. 때로는 유기를 조장한다는 시선을 견뎌야 했다.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유기를 조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의 모든 부모를 만나 차분히 사연을 듣고 설득해 부모가 아기를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는 막 스물이 될까 말까 한 임산부가 아이를 안고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다. 직업도 있고 동갑내기 아이 아빠는 양육 의지도 있었다. 문제는 친정 부모가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예상되는 반발과 아이와는 함께 살 수 없는 자취 환경이었다. 단순히 부모의 설득과 주거 문제 때문에 아이를 포기할 생각에 이른 것이다. 막상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할 경우들이 많다.

베이비박스에 와서 자녀를 키우기로 한 가정에 주사랑공동체가 매달 1~2회 3년간 제공하는 양육키트. 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그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도 차분히 아이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었다. 일단 한 달을 우리가 돌봐주고 있을 테니 아이의 부모는 친정 부모님을 찾아뵙고 잘 이야기해서 상황을 풀어가도록 상담해 주었다.

정확히 한 달 뒤 그들은 아이를 데리러 왔다. 친정 부모님은 충격이 커 용서하지 않으셨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알아서 하라는 반승낙 정도를 받아냈다. 그들은 곧장 아이와 함께 살 수 있을 만한 집을 구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철부지 연인이었지만 아기 앞에서 그들은 조금씩 책임지는 부모가 돼가고 있었다.

베이비박스 역사에 이 어린 연인들과 비슷한 사연은 수도 없이 많다. 이들은 어쩌면 베이비박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잠시 안전하게 도움을 받거나 긴급한 문제 해결을 위한 약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30대 여성이었다. 하룻밤 실수로 임신을 했고 아이 아빠에 대한 정보는 없다. 낙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시기를 놓쳐 출산했다. 그런데 출산 후 검진 과정에서 암이 발견됐다. 3기였다. 도저히 혼자 아이를 양육할 엄두가 나지 않아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려면 초기상담은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은 입양을 보내려면 아이 아빠 동의를 받아오라 했다. 당사자의 형편이나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아이 아빠를 찾을 여력도 없었고 당장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 공무원은 규정대로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규정으로 이 여성은 궁지에 몰렸다.

결국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다. 뒤돌아서는 그녀를 상담실로 안내한 후 몇 시간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다행히 상담 후 그녀는 다시 아이를 안고 돌아갔다. 엄마가 양육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는 엄마 품에서 키우기로 했다. 지금은 많이 호전돼 분유, 기저귀 등 아이 양육에 필요한 물품(양육키트)을 매달 보내고 있다. 우리는 그녀와의 소통을 기한 없이 이어나가면서 그녀의 건강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모든 걸 다 넉넉하게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어떤 순간에 늘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베이비박스가 그녀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어느 순간 베이비박스가 이런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만 개가 넘는 ‘양육키트’가 베이비박스를 거쳐 각 가정에 전달됐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은 만 개가 넘는 ‘양육키트’ 이야기를 하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본인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사례들이 만 개가 넘는다는 사실에 놀란다. 흔하지는 않지만 분명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일의 성격이 숨죽인 채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일어나는 사건 속 주인공은 이제 갓 태어난 생명과 위험한 출산을 감행한 위기 임산부라는 사실이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엄마들, 베이비박스를 지키는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엄마들의 임신이나 출산이 온갖 말하기 힘든 사연에 엮여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와의 대화 속에서 그들은 진심을 쏟아낸다. 대화 속에서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돕겠다는 우리의 진심 역시 쏟아낸다. 그리고 아기를 돌볼 수 있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함께 헤쳐나가겠다고 말한다.

만든 지 13년을 넘기고 있는 베이비박스 문은 올해도 매달 열 번 넘게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매번 뛰쳐나가 아이를 안았고 부모를 만나 같이 울었다. 생명이 걸린 문제다. 누가 뭐라 해도 누군가는 그들 사연을 들어주고, 그들 손을 잡아줘야 한다. 베이비박스는 내년에도 난곡동 언덕 위에 십여 년 고수해 온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로 했다.

위태롭게 숨죽여 찾아드는 이들의 발걸음은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 편에 서서 아기의 생명을 살리고 위기에 빠진 임산부의 울음에 같이 울어줄 나와 동역자들 역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종락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576605?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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