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에 비친 주사랑공동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베이비박스에 두 차례 아기 두고 갔다…‘영아유기’ 유죄일까
[가장 보통의 재판]
20대 여성, 두 차례 출산뒤 아기 맡기고 가
베이비박스 법밖 시설이지만 여러 안전장치
법원 “‘아기생명 위험’ 영아유기죄 성립안해”
7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 스틸컷.
<브로커>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관계를 맺은 이들의 특별한 여정을 담고 있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검정색 긴 생머리에 눈망울이 동그란 젊은 엄마가 지난해 10월 처음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피고인 석에 섰다. 움츠린 듯 말린 어깨에 시종일관 고개를 떨구고 있던 ㄱ(29)씨는 재판 내내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는 2018년 7월과 지난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 영아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첫 아기를 가졌단 사실을 알게 되고 ㄱ씨는 평범한 엄마들처럼 아기를 낳아서 키우고 싶다는 뜻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만한 경제적 형편이 안됐다. 당시 학생이었던 아기 아빠도 곤란해 했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ㄱ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베이비박스를 알게 됐다. 이곳이라면 아기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기 아빠와 함께 베이비박스를 처음 찾았던 2018년 7월4일 아침 7시, ㄱ씨는 여러 차례 베이비박스의 문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아기와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은 편지에 담아 베이비박스 안에 함께 남겼다. 첫 아기와 헤어진 뒤 피임에 신경을 썼지만, 피임약 부작용이 심해서 잠시 휴약기를 가졌을 때 두 번째 아기가 생겼다. 여전히 키울 형편이 안됐던 ㄱ씨는 지난해 4월19일 밤 10시, 홀로 베이비박스를 찾아 또 한 번 아기를 맡겼다. 그 사이 아기 아빠마저 ㄱ씨 곁을 떠나간 뒤였다.
베이비박스는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목사가 중증장애가 있는 친아들을 극진히 돌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중증장애아동의 부모들이 교회 앞에 아기를 두고 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작됐다. 버려지는 아기들의 생명을 보호할 방법을 고민하던 이 목사는 2009년 12월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베이비박스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영아유기를 조장한다거나 법적 근거가 없는 시설이라며 폐지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임산부에게 마땅한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아기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방안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논쟁이 이어진 10년여 동안, 베이비박스에는 모두 1990명의 아기들이 맡겨졌다. 올 상반기만 해도 55명의 아기들이 찾아왔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베이비박스를 찾은 부모들은 24시간 3교대로 상주하는 근무자들과 간단한 상담을 한 뒤 아기를 맡긴다. 베이비박스 쪽은 통상 1~2달가량 아기들을 돌보다 지방자치단체에 보호조치를 위탁해 아기를 넘기고, 지자체는 아동보호시설로 아기들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베이비박스 쪽은 부모들의 신원을 묻지 않고, 지자체로 넘긴 뒤 아기의 신상 정보도 보관하지 않는다. 영아보호기관으로서의 법적 근거가 없는 베이비박스로서는 이들의 개인정보를 관리할 의무가 없는데다, 부모와 아기의 신원이 알려지면 형사처벌 등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비밀에 부치는 셈이다. ㄱ씨도 첫 아기와 헤어진 뒤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아기를 맡긴 뒤 ㄱ씨는 이례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보호조치를 위탁받은 지자체가 아기의 종합건강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이 우연히 아기가 태어났던 병원이었다. 병원 간호사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아기를 알아봤고, 아동학대 신고의무기관인 병원 쪽이 경찰에 영아유기로 의심된다는 신고를 하면서 ㄱ씨는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영아유기 사건은 특정 장소에 아기를 두었을 때, 아기의 생명에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지와 유기를 하는 사람이 위험 발생 가능성을 알았는지가 쟁점이 된다. 그래서 ㄱ씨 쪽은 베이비박스의 구조상 아기에게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베이비박스 운영총괄팀장은 “베이비박스는 난방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에 아기의 체온 유지 등에 문제가 없고, 베이비박스 문이 열리면 교회 내부에 자동으로 벨이 울려서 근무하는 자원봉사자들 중 일부는 아기를 데리고 들어오고, 일부 근무자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아기의 부모를 붙잡아 상담을 한다”고 운영 방식을 설명했다. 변호인은 “첫 아기를 맡기며 이런 베이비박스 운영 구조를 알게 된 ㄱ씨가 두 번째 아기를 맡길 때는 교회에 들어가 아기를 직접 전달하고 본인의 사정까지 설명했다. 아기가 위험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고 덧붙였다. ㄱ씨는 9달 동안 이어진 재판 내내 거의 말이 없었다. 다만 그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보내면서 돈 문제와 아기의 안전을 가장 많이 고려했다”고만 말했다. 지난달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ㄱ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창모 부장판사는 13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ㄱ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교회에 아기를 돌보고 구호하기 위해 항상 사람이 상주했던 점, ㄱ씨가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장소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맡긴 사실이 인정된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을 마친 뒤 ㄱ씨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조용히 법원을 떠났다. ㄱ씨는 무죄를 받았지만, 두 번째 아기는 여전히 보호시설에서 엄마를 모른 채 자라고 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출처 : 한겨레
원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598452?sid=102